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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끄적끄적 리뷰

주식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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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담당업무 특성상 주가나 회사에 대한 문의 전화를 많이 받는다.

 

공손하게 예의를 갖춰 말하는 사람, 다짜고짜 화를 내며 비꼬는 사람, 곧 울음이 터질것 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

회사로 전화가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내가 회사 주식을 좀 많이 들고 있는데~' 로 시작하며 하나같이 회사의 정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회사의 정보란 금융감독원이 운영하는(?) '전자공시시스템(Dart)' 라는 곳에 올라오는

회사의 공시에 관한 정보로, 저런 조회 사이트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그러다 보니 주식프로그램에서 뜨는 뉴스기사(대부분 별 영양가 없는)나 철저한 익명으로 운영되는 포털사이트 증권

토론방에서 떠느는 얘기들에 휘둘리거나, 내가 아는 사람 혹은 내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등등 누가 추천해줘서 샀다고

말하며 현재까지 손실에 대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쯤이면 내가 아는, 혹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은 연락 두절이다.)

 

오늘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를 들어보아 삼촌뻘쯤 되는 중장년 남성으로 짐작하는데 굉장히 예의를 차린 말투로

조곤조곤 말씀하셨다. 안타까운건 지인의 지인이 잘 안다는 말만 듣고 전세자금을 빼서 투자를 했다가 수 천만원 손실을

봤는데 사실 본인은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도 잘 몰랐다는 사실이다.

은퇴 후 전세자금으로 주식투자를 했다가 큰 손실을 보고 있고 부인의 노동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나쁜 생각도 많이 했고 누우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라며 주식을 처분할지 가져갈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다.

 

보통은 그런 전화를 받으면 주식 운영에 대한건 주주의 판단일 뿐 회사는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그 어떤 보장도 할 수 없고,

공시된 사항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설명을 드릴 수 있다고만 말한다. 그게 원칙이고 내가 그들의 재산을 책임 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분은 목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절박한 심정인지 알 수 있었다. 딱 들어봐도 나이가 어린 나에게 

꼬박꼬박 선생님 이라는 호칭을 하며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시고 최대한 양해를 구하는 그 목소리에서

너무나도 안타까운 마음이 밀려들었다.

 

이런 저런 얘기들로 한 시간을 통화했지만 결론은 주식은 아무도 알 수 없으니 본인이 판단 할 수 밖에 없겠으나, 추가 손실을

입어도 괜찮다는 마음이 아니라 현재 남은 자산마저 잃으면 살아갈 날이 막막하다는 판단이라면 정리를 하는게 맞을거 같다고

말했다. 주식은 사도, 팔아도, 손실을 봐도, 이익을 봐도 그때 그랬을걸 하는 후회는 반드시 남는 것이니 미래를 보장 할 수 없다면

지금 당장 손에 잡히는 재산을 지키시라고...그리고 제발 앞으로는 없으면 안되는 돈으로 주식하지 마시고 주머니에서 툭 흘러

잃어버려도 아쉬움만 남을 정도의 돈으로 주식을 하시라고 몇 번이고 말씀드리며 이것저것 하지 말야야 할 것들을 알려드렸다.

 

통화가 끝나갈 무렵에는 오늘의 통화를 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며 연신 고마워 하셨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겁다. '주식하지 마세요' 라는 말이 목구멍 까지 나왔지만 그건 그분의 판단이니...그래도 그 분의 마음에 짐은 가벼워졌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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